*아래 두 글은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 손님방에서 가져온 자료들입니다. 

 

 

 

1. 코로나 유행병- 특성과 전망들

 

 

괴테아눔·정신과학을 위한 자유대학 의학분과

마티아스 기르케(Matthias Girke) & 게오르그 솔드너 (Georg Soldner) 2020. 3. 19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SARS-CoV-2는 전 세계로 확산되어 공공의 생활과 시민권에 전례없는 결과와 제한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경미한 감염 증상은 특히 호흡기와 심혈관계에 영향을 끼칩니다. 발열, 근육통, 피로감과 같은 일반적인 증상이 따르고, 질병이 어느정도 진행되면서 인간 리듬의 중심기관인 폐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SARS-CoV-2바이러스가 ACE2 수용체에 대해 친화성을 보인다는 것은 심혈관계 조절 장애와 연관이 있으며 이는 예를 들어 항고혈압약(ACE 억제제)을 복용하는 고혈압 환자들에게는 더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이러스와 기타 병원체들은 관련된 소인이 있는 경우에만 질병증세를 보입니다. 감염 후에 모든 사람이 질병증상을 보이는 것이 아니며, 증상들도 그 범위가 매우 광범위합니다. 최근 COVID-19에 대한 전세계 사망률의 추정치를 보면(모든 연령대에 걸쳐 계산되었음) 전세계적으로 0.25~3%에서, 독일은 0.3~0.7%까지 요동칩니다. 전수조사(blanket testing)가 요구되기에 거의 모든 나라들이, 감염된 사람들과 지금껏 사망한 사람들의 수를 정확하게 비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제적으로 인용되는 일부 수치들은 상당히 높게 나옵니다. 따라서 심각한 상황에 처한 이탈리아에서처럼, 감염된 사람들의 실제 수치는 양성으로 확진된 사람들의 수보다 의심할 여지없이 훨씬 높을 것입니다.

 

 

병원체가 침투하면 그 사람의 적극적인 반응으로 염증이 발생합니다. 그 목표는 외부 침입자를 이겨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병원체에 의한 감염과, 그 사람에게서 필수기질과 염증반응을 구분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병원체를 극복하기 위한 적절한 염증반응이 항염제나 해열제를 사용해서 무비판적으로 억제되는 상황에 놓여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더 심각한 질병과정을 조장할 수 있다는 근거들이 있습니다. 이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관한 인지의학의 치료 권고사항은 이미 발표했었습니다. 이에 따라 질병면역과 질병예방은 서로 다른 수준에서 고려되어야 합니다. 손을 씻는 것은 물론 비말감염을 막기위해 입을 팔꿈치 안쪽으로 가리고 기침하는 것도 특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질 역시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노인과 심혈관계 또는 당대사계와 같은 관련 문제를 가진 환자들에게서 COVID-19의 위험성이 분명히 높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와 불안 역시 면역력을 악화시키고 감염에 이어서 더 심각한 질병으로 진행시킵니다. 의식의 지나친 긴장, 수면부족, 운동부족은 감염 감수성을 올리고 감염병(에 쉽게 걸릴 수 있는)의 기질이 됩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이번 위기의 결과로 생계기반을 잃을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병의 성질

 

 

 

 

질병에는 다양한 단계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증상들이 하나의 전체로 합쳐져서 각자의 임상적 "그림"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의 유형을 표현합니다: 질병은 임상적으로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지만 공통점은 있습니다. 질병의 유형은 환자에게서 나타나고 개인적으로 표현되는 정신적 "원리"입니다. 따라서 그 질병이 가시적 증상 그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명백해 집니다. 후자는 증상에서 발현되는 질병의 성격을 지적합니다. 그러한 질병의 특성과 자질은 무엇일까요? 유명한 병리학자인 Rudolf Virchow는 이미 전염병이 발생하는 기질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만약 전염병이 기질을 필요로 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그것의 성격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단계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 기질; 불안을 통한 면역학적 민감성; 스트레스; 과도한 사고와 업무 -의심할 여지 없이 세계적이고 물질 지향적인 성과위주 사회의 "서구적 모델"이 가진 특징인데, 여기에는 쉼을 요구하는 유기체의 합리적인 반응인 발열이나 피로함 같은 증상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기꺼이 무시하려는, 그리고 이를 약물로 억제하려는 경향의 증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반복된 행동은 그 질병을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이끄는 중대한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과도한 요구와 긴장으로 고통 받는 영혼은 우리의 감정 내에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발달시키고 종국에는 감염이 리듬체계에 침투할 수 있는 기질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의 내용 또한 중요합니다: 우리가 진리에 접근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정신적인 세계와 연관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진리를 인식하는 것은 기쁨, 자신감, 신뢰와 성취감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필요한 방향성을 부여하고, 인간을 긴장과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따라서 신체의 치유력을 강화시켜주는 성질과 마주합니다. 대조적으로 진실되지 못함과 거짓은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그것들은 인간을 진리의 정신적인 세계로부터 분리, 고립시키고 진리로부터 흘러나오는 치유력을 방해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이에 대한 근거로 <인류의 거짓>은 유행병학적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습니다.(GA 99 로젠크로이처의 신지학, 1907.5.30. 강의) 이는 개별 환자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공개적인 토론에서 진실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가짜 뉴스와 거짓 왜곡의 시대에 이러한 정신적인 영역이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정신성을 배양하는 것과 물질주의 사상의 유해성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병균은 인간이 물질적 태도만을 취하고 잠의 상태에 빠질 때 가장 집중적으로 자라난다. 물질적인 상만을 가지고 잠이 드는 것, 그런 상태에서 정신세계로부터, 자신의 자아와 아스트랄체로부터 신체 유기체에 다시금 영향을 미치는 과정...”(GA 154 어떻게 정신세계의 이해를 획득할 것인가? 1914.5.5. 강의).

이러한 배경에서 감염병의 기원에 관한 음모이론은 -인지학과 관련해서도 종종 거론되는 것처럼-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고를 통해 진실을 검토하고, 넘쳐나는 뉴스를 스스로 소화하여 단순한 주장에 감염되게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으려는 이러한 의지가 우리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면역력의 한 부분을 형성합니다.

 

 

만약 의식, 즉 신경감각계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 의해 바이러스성 감기에 걸리는 기질이 유발된다면 이러한 기질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온기를 발생시키는 움직임과 의지활동이 요구됩니다. 두려움은 의지를 억제합니다. 진정 외부의 속도 조절자들(pacemakers)이 우리의 일상적 삶을 결정하는 것처럼 우리는 외적인 통제에 종속됩니다. 따라서 질병에 대한 우리의 기질은, 정보사회 안에서 우리 의식에 대한 과도한 요구; 우리 감정 안에서의 긴장과 불안 그리고 스트레스의 경험; 그리고 의지 안에서 우리를 점차 더 마비시키는 공포로 표시되어집니다. 인간의 삼중적 본성에서 보자면, 그러한 기질은 인간의 구성요소들이 신경감각계 뱡향으로 위치변화를 이룬 것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유기체의 남겨진 부분은 전염과 외부에 의한 점령에 노출되게 됩니다. 아동기와 청소년기에는 그 사람의 정신적, 영혼적 존재가 신체와 결합하고 형성한 후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다시 육체를 떠납니다. 이러한 점에서 COVID-19에 대한 기질을 발달시키는 사람은 특히나 노인들입니다. 코로나 대유행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명확하게 동물들은 병들지 않습니다. 따라서 분명한 점은 그것이 나(I)의 존재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방과 치료는 다른 많은 것들과 함께 정신적인 차원을 포함해야 합니다.

 

 

 

 

 

위생촉진(hygiogenesis), 행복과 건강 촉진(salutogenesis), 자가발생(autogenesis)의 강화

 

 

 

 

우리는 회복의 여러 측면들을 구분합니다: 우선 우리는 신체적 치유에 익숙하며, 군터 힐데브란트(Gunther Hildebrandt)가 정의된 바와 같이 위생촉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신체적 치유는 정신적인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신체 회복을 위한 좋은 상담자 역할을 하지 못하며 긴장과 내적불안은 생성되고자 하는 생명력과 치유력을 약화시킵니다. 의미가 인식되거나 생겨나서 그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고, 그리고 위협적인 상황에서 이를 역시 감당해낼 가능성이 있을 때, 행복과 건강을 촉진시킬 잠재력이 발생합니다. 아론 안토노프스키(Aron Antonovsky)'(I)'에 의해 안내되는 이 정신적으로 변화된 의식의 작업을 'SOC(응집감)'라고 불렀습니다. (SOC스케일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건강을 유지, 발달시키기 위해 자신의 어떤 저항 자원을 사용하는지 점검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마지막으로 내면적 발전은 질병과의 만남을 통해 일어날 수 있고 이는 자기발달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가발생입니다.

 

 

따라서 예방은 내적 측면과 외적 측면을 가집니다. 안으로는, 내적 응집력을 기르는 데 힘을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지지하는 관망과 정신적인 내용입니다. 전염병의 통제는 외적으로 고립으로 이어집니다: 공공 행사는 취소되고 국경은 폐쇄됩니다; 만약 사람들이 자연과 햇빛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하늘의 경험으로부터 분리된다면, 집안에 갇혀있는 것은 특히나 침습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더 크고 따뜻한 애정과 관심의 형태로서의 내적 정신의 빛, 내적 태양과 함께 생명적 가치관으로서의 내적인 헌신이 무엇보다 우선 강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희망이 없이는 치유를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어느 정도 우리는 앞으로의 전망과 내적 확신에 의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외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들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우리의 능동적인 자기 움직임과 태양과의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루돌프 슈타이너는 심지어 비타민 D가 발견되기 전인 1920년에 빛 부족에 대한 전염학적 연관성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GA 312 정신과학과 의학, 1920. 3. 24 강의). 적절한 시간에 적당한 양의 태양 빛을 충분히 흡수하는 것은 감염병에 대한 우리의 방어력을 강화시키고, 몸에 있는 '(I)'의 존재를 증진시키며, 수면과 건강에 매우 중요한 우리의 내적-호르몬적으로 중재되는 빛의 리듬을 안정시키는 기초를 형성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태양 빛과의 관계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밤에 대한 감사, 노발리스(Novalis)의 일련의 시들 제목으로 사용된 '밤의 찬가'에서 묘사되듯이,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대한 감사 역시 필요합니다. 인공 빛과 스크린을 통해 밤마다 발생하는 빛 공해가 건강에 좋지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 동안 잘 알려져 왔습니다.

 

 

우리의 리듬체계는 하루를 같이 보내는 그날의 태양 및 그 진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생물학적 주기리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루의 리듬적 구조, 그 중 특히나 깨어 있는 것과 잠자는 것 사이의 생리학적인 관계가 아주 중요합니다. 잠을 너무 적게 또는 너무 많이 자면 둘 다 모두 우리를 병들게 하고 무엇보다도 면역기능의 제약을 가져옵니다.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온기와의 관계입니다. 심혈관계는 우리 온기 유기체의 중추기관을 형성하며, 호흡계와 마찬가지로 강화가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우리 스스로의 움직임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1921년 루돌프 슈타이너가 치유오이리트미 코스의 다섯 번째 강의에서 이야기했던 건강/보건을 위한 오이리트미 연습은 -특히나 A(경외), 사랑(E), 희망(U) 세 가지와 추가로 리듬적인 R- 아주 유용한 강화 효과를 제공합니다. 또한 소그룹에서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연습하면 개별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외부에서의 움직임과 규칙적인 햇빛 흡수의 중요성은 이미 언급되었습니다. 감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러 면에서 합리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 내 격리"는 위에서 언급한 도움들을 제한하기 때문에 우려스러운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왜 바이러스는 인간 병원균으로 발생하는가?

 

 

 

 

하지만 한가지 커다란 의문점이 있습니다: 이 명백히 새로운 유형의 바이러스는 어디에서 왔고 왜 발생했을까요? 흥미롭게도 코로나바이러스를 포함한 많은 바이러스들은 동물계로부터 옵니다. 우리 역시 장 내에 박테리아, 미생물 뿐 아니라 장 내의 박테리아가 그러하듯-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 건강에 중요한 수많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면역 기능뿐만 아니라 유기체의 다른 많은 영역, 심지어 정신 건강까지도 장내 박테리아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물계의 바이러스가 왜 인간에게 위험을 주는 것일까요? 우리는 현재 동물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 많은 고통을 가하고 있습니다. 연구소 안에서 자행되는 동물 실험을 포함한 집단적이고 잔인한 살육은 동물세계가 무력하게 고통에 노출되는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살아있는 동물들의 일상적인 거래 역시도 그들에게 높은 공포감과 엄청난 스트레스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고통은 동물 유기체 내에 서식하고 있는 바이러스를 변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신체적 수준 만을 바라보고 대게 정신적 수준과는 분리해서 별도로 보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예를 들어,

 

 

 

 

장과 영혼을 연결하는 연관성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바이러스 질병의 발생과 관련하여, 이는 단지 바이러스의 기원에 관한 미생물학적 질문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동물 세계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생태학적, 도덕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슈타이너는 이러한 연관성에 대해 이미 100년도 전에 이야기하였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연관성에 대해 조사하고 과학적인 분석과 함께 더 깊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전망

 

 

 

 

마침내 관심사는 이 대유행의 생태적 차원으로 전환됩니다. 경제적 이해와 정치적 권력 면에서 세계화는 매우 확장되어왔습니다. 지금의 인류가 코로나 대유행으로 알게 된 것은 우리가 형성한 전체가 우리 인류, 후손 그리고 지구의 건강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대유행은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우리에게 그토록 위급하게 촉구했던 생명에 대한 새로운 경외심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궁극적으로 한 생명체를 다른 생명체로부터 그리고 그 생명체의 운명으로부터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우리가 너무나도 자주 경시했던 생명의 전체성를 바라보는 차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주간 알게 된 것은 경제, 교육, 교통 분야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법칙이 생명이 위험해질 때는 상대적인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새로운 융통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위험 그룹의 감염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동안 병원균의 확산을 막기위해 취해진 조치들, 특히 그 신속성이 여기에 적용되며, 여기에서는 모든 이들이 시민사회와 세계 공동체와 연대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감염성 병원균을 가능한한 근본적이고 포괄적으로 제거한다는 목표에 경의를 표했다면, 코로나 대유행은 (예를 들어 급격히 증가하는 행생제 내성처럼) 오히려 동물, 식물,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의 세계로부터 공존하는 문제와 면역과 경계를 습득하는 것에는 악마같은 적이라는 이미지 대신에 지속가능한 발전 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SARS-CoV 바이러스는 제거하거나 근절될 수 없으며 향후 수 십년 안에 이 분야에서 더 많은 새로운 돌연변이를 예상해야 합니다. 감염에 대한 예방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선 공동체 면역의 점진적 형성에는, 필요한 자제와 필요한 관계 사이의 균형을 목표로 하는 신중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 기술적 용어인 집단 면역역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왜곡된 관계를 나타냅니다) 자연 속 야외활동 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공감과 관심은 건강증진 행동이며 특히 현 상황에 중요합니다. 치유에도 애정과 인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관계 (여기서는 아이들의 인지도(popularity)가 그들의 장기적인 감염 위험에 어떻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연구가 있습니다.

 

 

회복탄력성의 강화하는 것은 이 위기에서 신체적, 영혼적, 정신적 차원을 가집니다. 온기와 삶의 리듬을 유지하고 햇빛을 쬐는 것 이외에도 신체적 수준에서는 건강한 영양과 독물질(,담배)을 피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쓴맛 채소는 면역을 강화하고, 지나친 설탕 소비는 저항력을 낮춥니다. 예방과 체질강화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적절한 인지의약품과 오이리트미 치료입니다. 정신적으로 그것은 불안, 고요, 용기 그리고 정신적인 관점을 다루는 것입니다. 불안과 정신적 긴장은 면역 기능을 제한하며, 부주의하면서 경솔한 행동과 같은 방식으로 질병의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마음의 기분(긍정적 감정 스타일)은 유익한 효과가 있으며 병에 걸릴 위험을 줄입니다. 정신적 스트레스와 긴장을 나타내는 타액의 코르티손 농도는 또한 감염에 대한 감수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적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명확한 사고, 균형잡힌 마음과 용기만이 질병의 성향을 감소시키기 때문입니다. “ 전염병의 근원지에서 발생하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우리가) 밤에 두려운 생각으로 잠을 자고 나면 무의식적 잔상이 영혼에 생겨날 것이며, 이는 공포로 가득한 영상들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병균을 육성하고 기르는 좋은 방법이다라고 100년전에 루돌프 슈타이너가 언급했습니다..

 

 

정신적인 관점에서 큰 질문이 떠오릅니다 : 대유행하는 질병이 인류에게 요청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편으로, 이 대유행은 사회생활을 극적으로 억제하여 점점 커지는 경제적, 사회적 및 사회관계적 위협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의 방향과 가치와 목표에 의문을 제기할 가능성과 그것들을 다시 결정할 가능성으로 인해 사회정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과 자연 특히 동물사이의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기후 위기와 지구의 질병 외에도, 우리 시대의 만연한 만성질환 그리고 같은 규모의 세계적 급성질병을 앓고 있는데 이것은 의학분야를 포함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생태학적 전환에 더욱 깨어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질병과 병원체에 대해 전쟁만 벌일 수 없으며, 그러한 기술들이 가치가 있기에 인간의 지속적인 강화도 중요하지만 공통의 우주 기원을 가진 인간과 자연사이의 생태적 균형에도 동일한 중요도를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질병에 걸리면 병원균을 제거하기 위한 유기체의 적절한 대응으로서 염증 조절은 필요하며 무비판적인 소염제와 해열제 치료는 필요치 않습니다. 현재 생명을 위협하는 COVID-19로 병에 걸렸을 때 어떤 명확한 근거를 가진 치료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는 관련자 모두에게 여전히 미지의 영역입니다. 집중치료의학에서 호흡곤란증후군의 치료에 대해 알고있는 것처럼, 비교적 자주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는 지역사회 획득 폐렴에 대한 치료경험을 인지의학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판단으로는 인지의학의 치료권장사항은 질병의 모든 단계에서 도움이 될 수 있고 특히 폐렴치료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심각한 COVID-19 환자의 집중치료에 여러 인지의학 병원이 참여함으로써 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권장사항을 계속 업데이트할 수 있을 것입니다.

 

 

Matthias Girke and Georg Soldner, 19 March 2020 

 

 

 

2. 코로나에 관한 고찰 _ 김학철(인지의학공부 모임)

 

1. 코로나에 관한 의학적 고찰

 

 

 

바이러스와 세균

 

 

코로나 사태를 지켜보며 제가 의사로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2009년 당시 종합 병원에서 하루에 100여명의 신종플루 의심 환자들의 기침 세례를 받으며 그들의 목구멍에서 검체를 체취하던 기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굉장히 많은 분들이 세균과 바이러스를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야생 동물과 식물, 곤충들이 득실거리는 깊은 밀림 속에 성이 한 채 있습니다.

 

 

그 성은 매우 견고하며 지어졌으며 100 명의 믿음직한 일꾼들이 치밀하게 관리하고 있는 대단히 안전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일꾼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가장 먼저 벌어지는 일은 청소와 자잘한 시설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일 겁니다.

 

 

방구석에는 먼지가 쌓이고 벽에는 곰팡이가 피고 이불 속에는 진드기가 득실거리고 정원에는 잡초가 자랍니다. 녹이 슬어 구멍 난 방충망 사이로 모기가 들어오고 녹슨 수도관에서는 녹물이 나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즉 감기에 걸린 상태입니다.

 

 

 

 

 

조금 더 그대로 방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남아있던 일꾼 중에 상당수가 모기가 옮긴 말라리아에 걸리거나 녹물을 마시고 배탈이 나서 결국 일을 할 수 있는 관리인이 10 명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애초에 100 명이 관리 유지하던 시설을 고작 10 명이 관리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당연히 힘에 부칠 수밖에 없습니다. 열 사람 몫의 일을 한 명이 해야 하니까요.

 

 

 

 

 

이제는 청소나 방충망 수리는커녕 야생 동물을 막기 위한 울타리 수리를 하기 조차 벅찬 상황입니다. 이제부터는 망가진 울타리를 뚫고 야생동물들이 성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들쥐와 뱀, 늑대, 심지어 야생 코끼리가 성 안을 헤집고 다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세균(박테리아)에 감염된 인간의 상태입니다. , 폐렴과 같은 합병증을 앓게 된 상태입니다.

 

 

 

 

 

이렇듯 바이러스와 세균은 크기부터 시작하여 생물학적 성질과 구조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뚜렷하게 다른 존재들입니다.

 

 

마치 세균이 <야생코끼리>라면

 

 

바이러스는 이불 속 <진드기알>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 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오직 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침입자라는 사실 정도뿐이며 그 밖에는 마치 코끼리와 진드기만큼이나 확연히 다른 존재입니다.

 

 

 

 

 

그런데 야생동물들이 들어와 난장판이 되어버린 성 안의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사냥덫이라는 것을 만들어내었습니다. (항생제의 발명을 말합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다양한 덫을 이용하여 야생동물들을 <어느 정도는> 막아낼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동물을 다 막아낼 수 있는 만능 덫은 아닙니다. 쥐덫으로 코끼리를 잡을 수는 없고, 코끼리 잡는 덫으로 쥐를 잡을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새로운 야생동물이 나타나면 그에 알맞은 덫을 새로 고안해 내어야만 합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야생동물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나마도 감격할 만한 일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집니다. 사냥덫을 이용하여 야생동물을 어느 정도 물리칠 수 있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진드기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코끼리를 잡는 강력한 덫이라도 그것으로 진드기를 물리칠 수는 없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감기에는 아직까지 치료약이 없다.’는 말을 흔히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 말의 의미는 현대의학이 야생동물(세균)을 물리치는 덫(항생제)을 만들어내기는 하였지만 아직까지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도구는 마땅히 만들어내지 못하였다는 뜻입니다.

 

 

 

 

 

세균이 마을을 침략하는 야생 코끼리 떼라면 바이러스는 진드기 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야생 코끼리는 덫과 총으로 대응할 수 있고 세균은 항생제를 통해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이러스에게 완전히 무용지물입니다. 코끼리 잡는 사냥총이 진드기 떼에 무용지물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불행히도 현대의학은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를 아직 만들어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반대중들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자주 망각합니다. 이미 세균을 막을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내었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는 무기를 만드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착각을 하는 이유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코끼리와 진드기만큼이나 확연하게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맨눈으로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새내기 의사시절 응급실에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깨달았습니다. 수백 권 분량의 의학서적을 읽고 일반인은 이름조차 모르는 생소한 질병들에 대해서도 달달 외웠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흔한 그냥 감기에 대한 처방을 정작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불편한 진실의 이유는 현대의학이 아직까지 감기(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치료수단을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감기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는 약을 발명한다면 노벨 의학상은 따 놓은 당상일 것입니다.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를 만들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 변화 속도가 다른 생명체와 비교할 수 없이 빠릅니다. 가령 인간이 유인원에서 현대인류로 진화하는데 천만년의 세월이 걸렸다면 바이러스는 그만큼의 변화를 이루어내는데 고작 몇 개월이면 족합니다. 그 의미는 인간이 어렵사리 바이러스 치료제를 만들어내더라도 불과 몇 달만 지나면 전혀 쓸모가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매년마다 새로운 독감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주사를 맞은 사람조차도 상당수가 독감에 걸리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약을 한 가지 만들어 내어 임상에 사용하려면 천문학적인 연구비와 수년간의 임상시험이 필요합니다. 야심차게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 약을 만들어봤자 약이 나올 때 쯤 되면 이미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판을 칠게 뻔한 상황이니 돈과 노력을 투자하여 약을 개발하는 것 자체가 헛수고가 되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학이 감기와 같은 바이러스 질환에 한없이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물론 흔히들 항바이러스 약제라고 부르는 약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수없이 많은 변종 바이러스들 중 아주 소수의 바이러스에만 쓸모가 있으며 그것도 불과 수개월 정도밖에는 효과를 낼 수 없는 임시방편에 가까운 약을 말합니다. (앞서 말했듯 수개월만 지나도 바이러스는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가진 새로운 종류로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우주에는 무한히 많은 별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어느 날 새로운 별을 누군가 발견한다면 그것이 그 날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태고적부터 우주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구상에는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바이러스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종류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마치 모래사막과 한 스푼의 모래를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두려워하는 이유로 그것이 신종감기 바이러스임을 말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바이러스라는 존재는 워낙 종류가 다양하고 그것들이 매순간 변화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감기 바이러스는 전부 다 신종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신종 바이러스라는 말은 그 동안 없었던 것이 새로 만들어졌다는 뜻보다는 단지 그 전부터 무수히 많이 존재하던 바이러스 중에 하나를 이제야 인간이 겨우 발견했다는 뜻으로 보는 게 알맞습니다. 마치 태평양 외딴 섬에서 새로운 종류의 조개를 오늘 발견했다고 해서 그것이 오늘부터 지구상에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신종조개의 종류는 수백이 될지 수천이 될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잘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의 곁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는 바이러스들이 진작부터 셀 수 없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운 좋게 어떤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는 약을 만들어낸다 할지라도 그 이외의 수많은 바이러스들에게는 여전히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마치 아마존 밀림을 헤쳐 나가는 사람이 어리석게도 오직 모기에 쏘일까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는 모기에 너무 신경이 뺏긴 나머지 그 곳에 온갖 종류의 독사와 독충, 맹수들이 득실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평소에 살고 있는 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 결핵 유병율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2017년 한 해 동안 한국의 결핵환자의 수는 36,044명이며, 결핵으로 사망한 수는 한 해에 1,816명입니다. 남미의 황열병 위험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은 의무적으로 황열병예방주사를 맞아야하듯 우리나라는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결핵 예방주사(BCG)를 의무 접종시켜야하는 심각한 결핵 위험 국가입니다. 결핵의 감염력은 공기 중으로 전파된다는 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치명도로 보더라도 결핵은 코로나 감염보다 훨씬 높습니다. (특히 결핵균이 척수신경으로 옮겨가면 정말 무시무시한 병이 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토록 위험한 결핵 감염 위험 지역에 이제껏 살아왔지만 외출할 때 결핵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쓴다고 말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결핵보다 훨씬 위험한 코로나감기를 막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만약 우리가 굳이 마스크를 써야만 한다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서보다는 결핵균을 막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대는 것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훨씬 합리적이고 근거 있는 대답이 될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를 말씀하시는 분들은 과연 같은 기간에 평범한 감기로 인한 사망자 수에 대하여 알고 계시는 지 궁금합니다.

 

 

전국의 병원실과 요양원에서 숨을 거두는 환자들은 대부분 평범한감기 바이러스 감염이 폐렴으로 발전되어 사망의 원인이 됩니다. 즉 지금 전국에서 한 달에 1000 명이 감기가 원인이 되어 사망하게 된다면 그 중에 10 명은 코로나 감기가 원인이고 나머지 990명은 다른 종류의 다양한 감기가 원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코로나 감기에 의해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더 늘어난다면 그것은 한 편으로 그 이외의 감기로 사망하는 수가 그만큼 더 감소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코로나 감기가 원인이 되어 사망에 이르게 될 정도로 면역력이 약했던 사람은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도 결국 다른 종류의 감기에 걸려 사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뜻입니다.

 

 

 

 

 

어느 나라에서 1년에 1000명의 사람들이 독사에 물려 죽는다고 칩시다. 그런데 신종독사가 하나 발견되어 10명이 물려 죽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 10명에게만 모든 관심을 쏟으며 새로운 독사의 확산만을 두려워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머지 990명을 죽이고 있는 기존의 독사에게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말이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종류의 독사에게 관심을 두는 것 또한 의미 없는 시도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세상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가 있고 그것들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인류의 기술력으로 그것들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약을 만드는 것보다 차라리 은하계 밖으로 우주여행을 다녀오는 게 더 빠를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손 놓고 지내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면역의 중요성

 

 

우리는 이제까지 현대의학이 바이러스 감염에 얼마나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과연, 감기가 인간에게 그만큼 치명적인 질환인가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분명 현대의학은 감기 바이러스에 한없이 무력합니다.

 

 

그런데 정작 인간은 그 정도로 감기에 무력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맨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성을 지키는 든든하고 실력 있는 일꾼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자연면역체계를 말합니다.) 성 안에 건강한 일꾼들이 충분히 있다면 사냥덫 따위는 애당초 필요가 없습니다. 사냥덫은 이미 침입한 동물을 잡기 위해 쓰는 것인데 애초에 울타리를 튼튼히 관리하면 침입자들이 들어올 수가 없을 테니까요. 이것이 바로 면역의 중요성입니다.

 

 

 

 

 

그런데 현대의학은 사냥덫 (페니실린)이라는 무기를 만들어내자 이에 너무나도 도취되어 그 후로도 오직 <적이 침입한 이후에 이를 물리칠 수 있는 무기>의 개발에만 집중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반면에 애당초 적의 침입을 막아낼 일꾼에 해당하는 자연면역체계를 어떻게 유지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의과대학에서 별별 희귀한 질병과 기묘한 약들에 대해 다루면서도 정작 가장 흔한 감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지요. 반면에 페니실린이 개발되기 이전의 전통의학들, 즉 한의학이나 인지의학과 같은 의학들은 적을 물리치는 무기의 개발보다도 성을 지키는 일꾼들을 충분히 유지하는 방법에 더 초점을 둡니다.

 

 

 

 

 

명상이나 정신분석을 깊이 경험해본 사람은 주변 사람들보다 본인 자신에 대해서 정작 아는 것이 거의 없었음을 깨닫고 놀라게 됩니다. 우리는 평소 외부세계에 신경을 쏟고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물질주의에 기반한 현대의학은 최근까지도 외부의 침입자를 물리치는 것에만 집중하여왔기 때문에 인간내부에서 일어나는 면역체계 시스템에 대한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면역학을 열심히 공부한 의사라 할지라도 정작 임상에서 환자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은 충분한 수면과 규칙적인 운동, 좋은 자세와 생활 습관, 깨끗한 환경과 좋은 음식정도의 상식적인 수준에 불과합니다.

 

 

의사입장에서는 그동안 면역학책에 나오는 복잡한 전문용어와 면역 메커니즘들을 머리 터지게 외웠던 것이 허무해지는 순간입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좋은 말 같긴 한데 막상 실행하려면 참 막막합니다. 과연 내 몸에 맞는 적절한 운동과 적절한 음식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한의학과 인지의학 같은 전통의학들은 같은 운동과 음식이라도 과연 어떤 것이 나의 면역체계를 활성화 시키는 데 초점을 둔 것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 보다 깊고 체계적인 이론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 방법 중 어떤 것들은 과학적적으로도 원리가 밝혀졌지만 상당수는 원리가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을 비과학적인 가짜의학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대과학 자체가 아직 그 원리를 과학적으로 밝혀낼 만큼 충분히 발달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마치 현미경을 만들만큼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선구자적인 의사가 세균의 존재를 추측하여 감염예방법을 주장하였는데 이를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현대의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약들 중에서 조차도 아직까지 그 정확한 과학적 기전이 밝혀지지 않은 채 단지 경험에 바탕 한 것들이 부지기수입니다. , 우리가 병원에서 처방 받는 약의 상당수는 아직 과학적으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써보니까 효과가 있길래~’ 쓰는 약들입니다.)

 

 

 

 

 

영양과 운동에 관한 부분은 개인적인 상태에 따른 편차가 있으므로 일괄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충분한 수면과 복부 체온 유지는 그러한 점에서 누구나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이러스 감염을 막을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복부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은 복부 장관계에 뻗어있는 거대한 신경 덩어리 (2의 뇌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 의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합니다.

 

 

 

 

 

복부 체온 상승 -> 복부 장관계에 뻗어있는 거대한 신경 덩어리(mesenteric nerve) 기능 향상 -> 면역기능 활성화

 

 

 

 

 

충분한 수면 -> 면역 관련 호르몬 분비 촉진 -> 면역기능 활성화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이러스 감염을 원천적으로 막거나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만든다는 것은 현대 의학 기술로는 불가능합니다. 만든다 할지라도 임시변통일 뿐 밀림 속에서 모기약 뿌리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모기는 당장 막더라도 그 밖의 수많은 위협에 여전히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점에서 달라질게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는 자연면역체계를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하여 현대의학은 연구를 시작은 했으나 아직은 걸음마 수준으로 임상적 적용에 큰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에 전통의학은 이 부분에 대하여 깊고 체계적인 이론과 실용적 사례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현대의학에 치여 그 명맥이 제대로 전해지는 경우가 흔치 않으며 또한 수많은 사이비 의학들 사이에 묻혀 있어서 그 중에 진짜 실력자를 구분하는 것이 숨은그림찾기 수준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눈앞에 있어도 보통 사람들은 웬만한 의학적 지식을 갖추지 않은 이상 옥석을 구별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쉽게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학적 지식이란 현대의학은 물론 인지학과 동양의학, 기타 통합대체의학에 대한 지식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적어도 의학적 요인만으로 따졌을 때 코로나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불안도는 다소 과도한 수준으로 느껴진다는 저의 견해를 적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코로나 때문에 왜 이리 전 세계가 이렇게 야단인가?’란 질문이 남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저는 1) 심리적 요인과 2) 경제적 요인, 3) 정치적 요인이 세 마리의 뱀처럼 서로 뒤엉켜서 나타난 결과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 이어 쓰도록 하겠습니다.

 

 

2. 코로나에 관한 심리학적 고찰

 

 

 

 

 

저는 이 전 글에서 현재 코로나에 대하여 우리가 갖는 관심과 불안도가 의학적 관점에서 따져봤을 때 과도하다는 저의 견해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의학적 요인 보다는 오히려 1)경제적 2)정치적 3)심리적 요인이 더 크다는 견해를 제시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심리적 요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불안증이 오히려 정상인 시대

 

 

현재 정신과에서 사용하는 진단명의 개수는 미국 진단체계 기준으로 300개 남짓 됩니다. (정신과 의사인 저도 다 못 외웁니다. 미국과 유럽 체계가 다르고 그마저도 자주 바뀌니까요. 그리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다보면 전혀 외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

 

 

그런데 그 많은 정신과 질환 중에 거의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증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불안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에 수많은 김치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소금이 들어가듯, 불안은 거의 모든 정신질환에 있어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 중에서도 불안의 순도가 아주 높은 것만을 순수한 불안증범주에 넣어서 진단하더라도 오늘날 정신과 진료실은 불안증 환자들로 넘쳐납니다. 아마 지금 당장 시내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붙잡고 조사를 하면 감기환자보다 불안증 환자가 많으리라는 확신이 들 정도입니다.

 

 

 

 

 

사람이 극심한 불안을 견디다 못해 폭발하면 공황상태가 됩니다. 공황장애의 유병률은 2% 정도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병원에 와서 정식으로 진단을 받은 사람만 계산에 넣은 것이기 때문에 진단을 받지 않은 채로 공황증을 앓고 계신 분들은 일반 인구 중에 10~20% 정도는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불안이라는 성격적 특성 때문입니다. 불안한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은 두려움과 감추기입니다. 그래서 정신과 병원에 와서 진단을 받는 것 자체를 낙인찍힌다고 생각하고 극도로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불안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극도의 불안감을 지니고 있음에도 남에게 티내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공황장애를 진단받은 연예인들이 TV에 나와서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카메라 앞에서는 멀쩡하게만 보이던 연예인이 집에 돌아가서는 발작을 하고 자해시도를 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성격적 특성을 감안했을 때 저는 일반 인구 중에 공황증 환자의 비율을 10~20%로 추정합니다. 어떤 모임에 스무 명의 사람이 모이면 그 중에 2~3 명은 극도로 심한 불안증을 남몰래 앓고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아시다시피 불안이라는 감정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금새 스며든다는 점에서 전염력도 무척 높습니다. 그런 점에서 불안증은 가히 코로나바이러스를 훨씬 능가하는 현대 사회의 판데믹 질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안증이 사회에 퍼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소 이를 잘 인지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기 환자라면 감추려 해도 콧물이나 기침 등을 통해 드러나겠지만 불안증은 본인이 감추면 남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 감추는 것은 그 분들의 특기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사회적으로 불안증이 서서히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욕조의 물을 서서히 데우면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사회에 불안증이 만연하게 되었을까요?>

 

 

 

 

 

어떤 분은 그만큼 요즘 세상이 무서우니까라고 대답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냉정히 한 번 생각해본다면 과연 현대 사회가 정말 그만큼 무서운 사회인가요?

 

 

 

 

 

여러분의 어린 시절을 한 번 가만히 되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유치원을 혼자 걸어 다녔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도중에 한 눈이라도 팔게 되면 등원에 걸리는 시간이 한없이 길어져서 이미 잠긴 유치원 대문을 두드려 열고 들어가기도 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도중에 아이들과 어울려 놀이터에서 놀다보면 해질 무렵이 다되어 집에 들어가는 일도 종종 있었지요.

 

 

핸드폰도 없고 CCTV도 없던 시절에 유치원생을 몇 시간씩 밖에서 방치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그랬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부모님과 함께 등하원을 하는 친구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우리가 보기에는 아직 아기 티를 못 벗은 몇몇 울보들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저희를 그렇게 방치(?)하셨던 저희 어머니조차도 그 때 기억을 떠올리시며 어쩜 그 때는 그러고도 불안한 줄 모르고 살았어. 지금이라면 말도 안 되는 얘기지.”라고 하십니다.

 

 

 

 

 

그 당시에는 불안하지 않았던 일이 지금은 불안한 일이 되어버린 것은 그 당시가 유괴를 비롯한 각종 아동범죄나 안전사고가 지금보다 훨씬 더 드물었던 안전한시대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 같았던 군부독재 시절에 각종 범죄와 사고 또한 지금보다 더 심했으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전쟁이 막 끝나고 우리 부모님들이 보냈던 유년시절은 법과 질서조차 기대할 수 없었던 무법천지에 가까운 시대였습니다.

 

 

그와 비교하면 지금 우리는 거리마다 CCTV가 지켜보고 있고, 유치원에는 도어락이 달려있으며, 학교에는 보안관이 상주하고, 아이들 손목에는 키즈폰이 채워져 있고, 잃어버린 아이는 경찰서에서 등록된 지문으로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정상적인부모들은 아무도 아이를 유치원에 혼자 보내지 못합니다.

 

 

혹시라도 그런 부모가 있다면 비정상적인부모 취급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분명 과거보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사회가 옛날보다 더 위험해졌기 때문라고 답하기에는 근거가 무척 희박합니다.

 

 

 

 

 

저는 저희 부모님들이 저희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해서 자식들을 방치(?)시키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특별한 용기를 발휘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 분들은 지금보다 불안하지 않은 것이 정상이던 시대를 사셨던 것 뿐입니다. 그와 비교하면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더 불안한 게 오히려 정상인 시대를 살고 있을 뿐이지요.

 

 

 

 

 

그렇다면 이 시대가 과거보다 훨씬 더 안전해졌지만 <불안한 게 오히려 정상>인 시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지난 번 글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중환자실에서는 코로나감기로 죽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일반감기로 인하여 목숨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일반감기는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코로나감기에만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분들께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에 대하여 어느 정도 짐작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이러한 심리적 요인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정치적, 경제적 요인들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3. 심리적 불안과 정치 경제의 관계

 

 

 

 

 

불안의 인지학적 의미

 

 

첫 번째 글에서 저는 코로나에 대하여 쏠리는 우리 사회의 관심이 의학적 요인만으로 분석했을 때는 다소 과한 경향이 있다는 저의 견해를 말씀 드렸습니다.

 

 

 

 

 

두 번째 글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지배하는 주요한 감정이 불안임을 지적하고 이를 불안증이 오히려 정상인 시대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경제와 정치라는 다른 영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리학에서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크게 인력과 척력으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습니다.

 

 

동양학에서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양과 음으로 구분합니다.

 

 

인체에서는 부교감신경과 교감신경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인간 내면의 힘을 리비도공격성으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인지학에서는 그 힘을 동감 sympathy’반감 antipathy’로 구분합니다.

 

 

 

 

 

전자의 힘이 주도하는 분위기를 경험하려면 유치원에 가서 잠시 앉아있으면 됩니다.

 

 

아이들이 당장은 낯을 가리겠지만 한 시간만 함께 있어도 쉽게 친해집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는 동감의 힘이 지배적인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지진으로 살던 집이 무너져도 하루만 지나면 뛰어 놉니다. 좋게 표현하면 세상 낙천적인 존재들이지만 나쁘게 표현하면 무모하고 대책이란 없는 존재들입니다.

 

 

 

 

 

반대로 후자의 힘이 주도하는 분위기를 경험하려면 노인정에 가서 잠시 앉아 있으면 됩니다.

 

 

노인들은 당장은 예의 바르게 낯선 이를 대하지만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아이들만큼 친해지기가 어렵습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상대를 밀어내는 반감의 힘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노인들의 특성은 좋게 표현하면 조심성이 많은 것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불안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두 가지 힘은 어느 하나가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며 단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대칭적 관계일 뿐입니다. 어느 한 가지 힘이 주도적일 때 우리는 혼란을 느낍니다. 그리고 두 개의 힘이 균형을 이루는 순간 우리는 찰나의 평화를 느낍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두 가지 힘이 밀물과 썰물처럼 잠시도 멈춰있지 않고 역동적으로 균형을 이루며 존재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본적으로는 혼란스러운 세상에 살고 있으며 밀물과 썰물이 균형을 이루는 아주 찰나의 순간에만 평화를 느낍니다.

 

 

 

 

 

그러한 점에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평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과연 어느 쪽 힘이 과도한 상태이기 때문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 전 글에서 현대 사회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주도적인 사회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이를 인지학적으로 해석하면 반감 antipathy’의 힘이 지배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슈타이너의 말을 인용하면 오성혼이 극한에 이른 사회이며, 유발 하라리의 말을 인용하면 물질과학적 세계관이 정점에 이른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개인과 집단적 감정 상태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불안입니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출산률이 높아 아이들이 많은 나라는 가난하더라도 낙천적으로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적고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나라는 부자라도 전반적으로 불안감이 높고 행복지수가 낮은 경향이 있습니다. 유치원과 양로원의 분위기가 차이가 나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경제와 정치에 미치는 영향

 

 

 

 

 

세상에 대책 없는 낙천주의가 팽배해도 문제가 벌어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과도하게 조심하는 불안증으로 가득 차 있어도 역시 문제가 벌어집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장사꾼이라면 낙천주의가 지배하는 세상과 불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각각 어떤 전략을 사용하였을 때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요?

 

 

 

 

 

만약 낙천주의자를 대상으로 돈을 벌려면 쾌락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상품을 준비하여 가볍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아 광고를 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대학교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려면 배낭여행 상품을 팔거나 사교클럽을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광고는 푸른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는 그림처럼 밝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이 적절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불안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을 벌려면 당장의 즐거움보다는 미래의 안전을 제공하는 노후대비 보험 상품을 파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광고에 밝고 건강한 모습의 노인을 등장시킬 수는 있지만 반드시 리어카를 끄는 구부정한 노인과 대비시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낙천주의가 팽배한 시대에는 밝고 희망적인 뉴스가 훨씬 잘 팔립니다. 그러나 반대로 불안이 팽배한 시대에는 희망적인 뉴스보다는 불안을 자극하는 뉴스가 훨씬 더 잘 팔립니다.

 

 

 

 

 

만약 여러분이 언론사 편집자라면 오늘 있었던 두 가지 사건 중에 딱 하나만 골라 뉴스를 내보내야하는 상황에서 과연 어느 쪽을 고르는 게 시청률을 높일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여 결과적으로 현 시대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불안을 자극하는 뉴스에 노출되게 됩니다. 사람들의 감정상태가 불안하니 불안을 자극하는 뉴스가 잘 팔리고 그러한 뉴스를 자꾸 접하게 되니 사람들의 불안이 더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눈덩이를 굴리듯 불안은 점점 더 커지고 덕분에 정신과 진료실은 불안증 환자들로 초만원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특히 불안하게 만들었던 건강 관련 뉴스들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었던 시기를시간 역순으로 한 번 늘어 놓아보겠습니다.

 

 

 

 

 

코로나 (2019) - 지카바이러스 (2018) - 미세먼지 (2017) - 메르스(2015) - 에볼라 (2014) - 신종플루(2009) - 광우병(2008) - 사스(2003)

 

 

 

 

 

20여 년간 비슷한 색깔의 이슈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이슈들이 발생하는 주기가 더 촘촘해진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현재에 가까울수록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뜻이지요.

 

 

 

 

 

흥미로운 사실은 2003년 사스 이전에 비슷하게 이슈가 되었던 사건에 대하여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기억나는 사건이 있으신가요?) 이러한 종류의 사건들이 21세기가 되면서 !’ 하고 갑자기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히 아닐 텐데 말입니다. 누군가가 서기 2000년을 기점으로 이전 기억을 전부 지워버리기라도 한 것일까요? 아니면 20세기에는 실제로 이런 일들이 지금보다 훨씬 적게 일어났던 것일까요?

 

 

 

 

 

제가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2000년은 인터넷이 대중들에게 일반화된 결정적 시기였다는 것입니다. 98년 군입대 당시에는 친구들이 모이면 당구장을 가는 것이 당연한 절차였는데 2000년 제대 당시에는 PC 방을 가는 것이 당연한 문화로 바뀌어 있었거든요.

 

 

 

 

 

그렇게 우리는 TV나 신문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던 시대에 비하여 훨씬 더 빈번하게 각종 정보에 노출되게 되었습니다. 거실에나 나가야 볼 수 있던 TV와 달리 컴퓨터는 책상마다 놓여있고 항상 켜져 있으니까요. 그리고 신문은 한 번 흝어 보고 나면 더 이상 볼 게 없지만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는 무한하니까요.

 

 

그런데 또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이 나왔습니다. 그 전에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부팅시켜야 볼 수 있던 정보들을 이제는 지하철에 앉아서도 손가락 터치 한 번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으로 살펴보면 그 전에는 큰 이슈꺼리가 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2000년을 기점으로 커다란 이슈로 다가오게 된 것과 특히 2010년 이후에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이유에 대하여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 중에 제가 피부로 가장 크게 느꼈던 최초의 사건은 바로 2009년 가을에 발생했던 신종 플루입니다. (공교롭게도 아이폰의 한국 최초 출시일이 같은 시기입니다.)

 

 

그 당시 저는 갓 의사 면허를 따고 종합병원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가을은 특히나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동료 인턴 한 명이 개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 두면서 저는 본래 임무였던 내과 인턴과 응급실 당직 외에 외과 인턴 일까지 동시에 맡아야만 했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을 채 못자고 격무에 시달리던 중에 업친 데 덮친 격으로 한 가지 업무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종플루가 의심되는 환자들을 검사하는 일이었습니다.

 

 

 

 

 

검사 자체는 무척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환자의 목구멍을 살짝 긁어서 검체를 채취하는, 불과 10초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다른 일을 하다가 콜을 받을 때마다 뛰어가야 한다는 것과 그런 일이 하루에 많게는 100번 씩 벌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목구멍을 들여다보며 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환자가 기침이라도 하면 코 앞에서 그 침을 정면으로 맞아가며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어느새 부터인가 저를 포함한 동료 인턴들 모두가 비밀스러운 소원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신종플루에 걸려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신종플루 진단을 받은 의료진은 2주간 병원에 출근을 하지 못하도록 방침이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당시 하루에 한 시간도 못 잘 정도로 일이 고되다 보니 비록 병에 걸려 고생하더라도 잠이라도 실컷 자자는 심정이 되어버린 것이었지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 소원을 이루는 것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격리가 필요한 신종플루 의심환자를 하루에도 수십 명씩 직접 만나고 심지어 그들이 튀기는 침을 매일 맞았으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저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인턴들은 차례로 그 소원을 이루는 바람에 저 혼자만 신종플루의 은총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 그들 몫의 일까지 넘겨받아 하게 된 비운의 인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동료들이 무려 2주간의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돌아와 활짝 핀 얼굴로 근무를 시작하였을 때 저는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저 역시 증상은 없었지만 시간을 내어서 검사를 받았다면 충분히 양성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1초가 모자를 정도로 바쁜 가운데 시간을 내기가 아까워 미루다보니 검사를 받지 못했던 것이지요. 반면에 다른 인턴 중에서 부지런한 사람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를 받았고, 그 중 운 좋은 몇 명은 신종플루에 당첨되어 2주간의 휴가를 다녀온 셈이 된 것이지요. (뒤에 언급하겠지만 제가 검사를 받지 않았던 이유에는 비싼 검사비도 한 몫을 했습니다.)

 

 

 

 

 

개인적인 추억을 이렇게 길게 이야기한 이유는 이러한 사건들이 갖는 경제적인 측면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당시 저는 격무에 시달리는 인턴을 신종플루 검사실에까지 배치하는 병원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검사는 누구라도 5분만 시간을 내면 배워서 할 정도로 간단한 검사이기 때문에 굳이 의사자격을 가진 사람이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검사비용을 알고 나서 그 이유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10초도 걸리지 않는 그 간단한 검사에 드는 비용은 당시 7만원 남짓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하루에 100명을 검사하면 700만원의 매출이 발생하고 한 달에는 적어도 1~2억의 매출이 생깁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당시 병원 입장에서 200만원의 월급만 주면 24시간 내내 일을 시켜도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 인턴이었습니다. 그런 거저먹는 장사를 병원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치료제인 타미플루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종플루에 대한 사회적으로 불안이 컸던 만큼 약값 또한 비쌌습니다. 나중에 의료보험이 적용되어 환자 부담금은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국가에서 지출하는 비용이 커졌습니다. 그리고 아직 신종플루 진단이 나오지 않아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는 환자들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비싼 가격에 타미플루를 처방 받기를 너도나도 원했습니다. 국민 대부분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 누군가(!)는 돈을 쓸어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최근 지인에게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8평짜리 조그만 약국에서 마스크 판매로만 한 달에 1억의 수익을 올렸다고 하더군요. 그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가 코로나로 불안에 떠는 것과는 별개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웃음 짓는 인물들이 있으리라는 것을 추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언론은 각자의 이익을 위하여 자연스럽게 공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첫 번째 글에서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충분한 수면복부체온유지를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이 방법들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특별한 기구나 약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돈벌이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까지 쓴 세 편의 글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코로나에 대하여 현 시대가 느끼는 불안감은 다소 과한 편으로 의학적인 위험성만 놓고 보면 이를 설명하기가 매끄럽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2. 그러나 현 시대가 이례적으로 불안이라는 심리적 질병이 만연한 사회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부분에 대하여 설명이 가능합니다.

 

 

동료의사 집단에 가서 보면 의학적 지식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크게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가만히 보면 그런 분이 예전부터 불안이 많은 성격을 지니고 계셨던 경우가 많습니다. 불안이 많은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감정과 이성중에 감정이 대체로 우세하게 작용합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현재 감정 상태(불안)를 정당화할 수 있는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취하려는 경향을 갖게 됩니다. 의사도 감정을 지닌 한 명의 인간인 만큼 이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특히 원래 성격적으로 불안도가 높은 분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설령 의학전문가라 하더라도 위기 상황에서 갖고 있는 지식이 현실에 고스란히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3. 현 시대에 불안이 만연하게 된 이유를 따라가 보면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4. 불안이 많은 시대에는 그것을 이용하여 금전적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불안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이런 의문을 가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사실들을 정부 고위 인사들이 모를 리가 없는데 그럼에도 각국 정부들이 이렇게 강력한 조치들을 취하는 것은 필시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정치에 관한 부분입니다.

 

 

 

 

 

장사치가 고객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언론이 시청자의 눈치를 맞춰야 하는 입장이라면

 

 

정치인은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 입장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정치인이란 기본적으로 를 먹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에서는 불안도가 높은 시민들을 상대하려면 무조건 그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만 합니다. 설사 그 불안도가 불합리한 수준이라 하더라도 자칫 그들의 비위를 거슬렸다가는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이 끝장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극도로 불안한 감정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진정하라고 말하는 사람은 의심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에게 괜찮아. 안무서운거니 진정하렴.’이라는 어설픈 안심의 말은 오히려 역효과만 낳을 뿐입니다.

 

 

그들을 달래고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신, ‘맞아. 네가 무서워하는 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해 막아줄게. 나를 믿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나라에서 굿을 하면 코로나가 종식되리라는 믿음이 <전 국민적으로> 팽배하다면 정치가 입장에서는 정말 청와대에 무당을 불러서 굿이라도 해야만 정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믿음인지 여부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이렇게 코로나는 그것이 지닌 실제 의학적 의미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인

 

 

심리적, 경제적, 정치적인 요인을 통하여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동감과 반감의 힘이 균형을 이루는 사회

 

 

저는 이 글을 통하여 코로나 바이러스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종류의 바이러스가 집단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분명히 우리의 삶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결코 어쩌다 한 번 드물게 일어나는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은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종류의 바이러스에 끊임없이 감염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를 막기 위해 우리는 어느 정도 조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원천봉쇄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교통사고는 무척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드물게 일어나는 특수한 사건도 아닙니다. 물론 어느 정도 조심은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우리가 자동차 없는 세상을 사는 것이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누군가와 평생 함께 살기로 결심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 무척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또 무조건 독신으로 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감염은 결혼과도 비슷합니다. 그것이 가져올 결과가 너무나 다양하다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인간은 장내세균에 감염되어 있지 않다면 제대로 소화를 시킬 수 없습니다. 기생충 감염은 무서운 자가면역질환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합니다.

 

 

 

 

 

인간의 근육과 장기를 움직이도록 만드는 세포내 기관인 미토콘드리아는 심지어 먼 옛날 인체에 침입한 어떤 바이러스가 세포안에 눌러앉아서 아예 살림을 차리고 함께 살고 있는 경우입니다. 우리가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인간은 식물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동양학이나 인지학에서 늘 말하듯 인체와 우주는 반감’()동감’()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상태가 가장 건강한 상태입니다. 우리 사회 역시 작금의 코로나 사태에 대하여 너무 반감적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동감적이지도 않은 균형 잡힌 태도를 취할 때 가장 건강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이 작은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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